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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횟집이나 초밥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인 광어. 원래 광어는 엄청난 고급 어종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80년대만 해도 비싼 몸값에 구경조차 쉽지 않았던 광어는 어떻게 국민 생선으로 변신한 걸까요?


    광어 혁명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광어 양식이 시작되기 전인 1980년대, 광어는 고급 어종으로 1kg 당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 됐다고 해요. 당시 사회초년생 월급이 30만 원이었으니까,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킬로당 백만 원에 가까웠던 거죠.

     

    광어는 비린내가 적고 식감과 감칫맛이 뛰어나 최고급 횟감으로 꼽혔어요. 게다가 생선 중에선 살수율도 높은 편이라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인기의 비결이었죠.

    살수율 : 생선을 회로 떴을 때 전체 무게 대비 나오는 횟감의 양을 뜻해요.

    보통 생선들의 살수율은 30~40%정도고, 대가리가 큰 우럭은 살수율이 25% 정도로 낮은 편이죠. 하지만 광어는 대가리가 작고 뼈도 얼마 없어 살수율이 50% 이상이라고 해요.

     

    당시 정부에서는 광어를 양식해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어요. 국가적으로 광어 양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 결국 연구원들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광어 양식에 성공했어요.

     

    1990년대부터는 광어 양식이 대중화되면서 어디서든 흔하게 즐길 수 있는 국민 생선이 됐고, 지금은 한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광어 양식 강국으로 자리 잡았어요.


    광어가 바꾼 횟집 풍경

    사실 광어 양식이 성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횟집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어요. 주로 민물고기 위주였고, 지금처럼 횟집이 흔하지도 않았대요. 당시에는 지금의 한우 가격 못지않게 회 가격이 매우 비쌌다고 해요.

     

    하지만 광어가 국민 생선으로 자리 잡으면서 회는 점점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시작했어요.

     

    고급 일식집에서만 팔던 회는 동네 식당이나 포장마차 등에서 저렴하게 팔리게 됐고, 대형마트에 회 코너까지 생기면서 회가 친숙하고 대중적인 음식이 된 거죠.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한국 광어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수출도 잘 됐어요. 한때 1년에 3천 톤 가까이 수출할 정도로 광어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죠.


    광어의 몰락과 부활

    영광도 잠시, 시간이 지나자 광어의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들었어요. 소비자들이 방어, 농어 등 다양한 횟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연어와 같은 수입 횟감도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일본 경기 침체로 광어 소비가 줄고, 설상가상으로 2019년 일본이 우리나라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국산 광어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면서 수출에도 차질이 생겼어요.

     

    결국 광어 가격이 폭락하면서 양식 광어 수백 톤을 강제로 폐기처분하는 가슴 아픈 일까지 벌어졌었죠.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광어는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해요. 팬데믹 이후 배달 음식 수요가 폭증하면서 광어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 거죠. 이에 따라 광어 가격도 다시 정상 수준을 회복했어요.

     

    지금은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광어, 이렇게 귀한 생선이었다니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 양식한 광어는 앞으로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시장을 넓혀갈 거라고 해요. '광어 종주곡'이라는 별명, 자랑스럽게 여겨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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